처음에는 나도 그랬다. 혼자 살기 전 까지는 도무지 가정 경제를 책임 져 본 일이 없어서, 독립을 하고도 한동안은 한 달 월급을 월초에 다 써버리고는 월말에는 거의 빈 털털이로 살았었다. 물론 이건 집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쌀 걱정, 월세 밀릴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때의 돈 없음이란. 다만 내가 뭘 사댈 돈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지. 생활비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 살아서 전기세도 내고 월세도 내고, 내 입에 들어가는 반찬거리 하나 쌀 한 톨까지다 사야 하니 돈이 없다는 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 문자 그대로 굶을 수도 있단 소리였다. 그래서 첫 달을 그렇게 어이없이 보내고 난 다음 달에는 그 전달에 들어갔던 공과금과 월세를, 낼 날짜가 되기 전에 미리 빼서 보관을 했다. 그러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월말이면 돈이 없어서 라면을 끓여 먹거나 심할 때는 차비 걱정까지 해야 했었다.
몇 개월을 그렇게 잔돈푼까지 긁어서 살고 나니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는 아무리 엄마가 아끼라고 해도 그게 그저 으레 하는 엄마표 잔소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아껴야 했다. 아끼지 않고서는 도저히 한 달 동안 굶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일단 제일 처음 한 일은 신용카드 할부금을 다 해결하는 일이었다. 무이자라 좋다고 3개월씩 할부를 해댔더니. 월급의 대부분을 할부금액을 갚는데 쓰고 있었다. 할부금을 갚느라 현찰이 모자라니 당연히 또 그 달은 카드로 연명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원래 있던 할부금 플러스 생활비로 쓴 카드 값까지 더하니 나중에는 그 금액이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사고 싶은 것, 혹은 사야 할 것이 있어도 그 다음 달에 갚지 못할 금액은 당분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랬더니 한 3개월 정도 후에는 카드 값이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카드 값은 줄었지만 여전히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내 월급은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였다.
그래서 내 월급에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뭔지 찾아봤더니 다름 아닌 월세였다. 당시 나는 보증금 500에 월 40만원인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만약 이걸 전세로 돌릴 수만 있다면 한 달에 40만원이 고스란히 남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만원씩을 빼줬으니,(요즘은 100만원에 1만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미 낸 보증금을 합친다 하더라도 1천 5백만 원 이라는 큰돈이 필요했다.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니 당시의 나로서는 정말 아찔한 금액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저 돈을 모으는 기간은 상당할 것이고, 그 동안에도 월세는 끊임없이 들어간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딱 한번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다. 대신 한 달에 50만원씩 30개월 동안 갚아 나가기로 했다. 일단 월세는 들지 않고 원금을 갚아 나가는 형식이었기에. 당장은 월세보다 10만원이 더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게 이득이었다. 그리고 보너스와 각종 상여금이 나올 때 마다, 또 저금하는 셈 치고 아껴 쓴 돈을 모아 조금씩 더 갚았더니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 갚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나는 1년 5개월 동안 1천 5백만 원이라는 내 돈을 갚을 수 있었는가. 그건 무조건 아끼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회사원이었기에, 내게 기대할 수 있는 수입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처럼 인세가 들어 올 일도, 연재를 하나 더 해서 돈을 벌 길도 없이 오직 월급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내가 아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아꼈다. 먼저 나는 대형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버릇부터 고쳤다.
알다시피 대형 마트는 모든 물건을 대용량으로 싸게 판다. 그래서 지금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쓸데없이 많이 사게 된다. 긴 기간을 보면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에는 필요치 않은 돈이 더 들어가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대용량으로 파는 건 화장지, 세탁 세제, 생리대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구입하지 않았다. 특히 식료품의 경우 싸다고 무턱대고 사놨다가 유통기한이 지나서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일이 허다했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약간 더 비싸도 동네 마트에서 딱 먹을 만큼만 장을 봤다. 그리고 냉장고를 다 비운 다음 장을 본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실 냉장고를 뒤져보면 아직 해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이 많은데도 마트에 가면 자꾸만 새로운 식재료를 사게 된다. 그리고 샴푸나 린스, 바디클렌저 같은 것도 많이 준다고 대용량을 사지 않았다. 왜냐면 쓰다가 보면 너무 질려서 결국에는 다 쓰기도 전에 다른 제품을 사게 되기 때문이었다.
장을 볼 때 새운 또 한 가지 원칙은 똑 떨어지지 않는 한 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곧 떨어질 것 같은 무언가를 사느라 미래의 소비를 현재의 소비로 앞당기지 않았다. 정말 다 떨어져서 지금 당장 필요해야만 그것들을 구입했다. 소비는 늦출수록 무조건 이득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트에 가는 회수에 제한을 두었다. 아무리 안 산다 하면서도 이놈의 마트라는 것은 막상 가면 사야 할 것이 마구 생겨나곤 했다. 견물생심이 이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도 없었다. 마트의 물건들은 비싸 봐야 다른 곳에서 쇼핑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돈 단위가 낮은 편인데, 안 그래도 가뜩이나 아껴 사느라 쇼핑에 대한 욕구를 눌러 참고 있던 나는 가끔씩 발작적으로 카트기에 물건을 쓸어 담곤 했다. 그래서 마트는 한 달에 딱 두 번만 가기로 했다. 그래야 거기서 만약에 미쳐버려도 감당이 되니까.
어떤 이들은 혼자 사는데 마트 장이 다 웬 말이냐고 하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혼자 살아도 해 먹어야 할 것은 식구가 많은 집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재료들의 묶음 단위가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썩혀서 버릴 뿐. 버리는 식재료가 많다 싶으면 나는 차라리 마트 대신 가끔 백화점에서 장을 봤다.(동네 마트는 없는 게 너무 많으므로) 백화점은 당연히 더 비싸지만 대신 싱글들을 위한 소 포장이 많고, 또 가격이 비싸다고는 해도 큰 묶음을 사는 것 보다는 쌌다. 그리고 야채는 되도록 시장에서 사서 손질해서 먹고 나머지 식재료는 그때그때 필요한 곳에서 적당량만 구입했다. 그랬더니 생활비가 놀랍도록 줄었다.
그 후 줄이기 시작한 것이 전기세, 난방비 등이었다. 일단 나는 집안에 있는 조명 등.일명 무드 등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 끄기 시작했다. 워낙 따스한 불빛을 좋아해서 형광등이 아닌 노란 빛이 나는 백열등을 썼었는데 이게 전기를 장난 아니게 먹었다. 어둠을 밝힌다는 조명기구 본래의 목적이 아닌 분위기 때문이었으므로 끌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었다. 난방비는 출근하면서 외출모드, 혹은 날이 좀 따뜻하다 싶으면 아예 꺼놓고 다녔다. 그리고 뜨거운 물에 설거지 하던 버릇을 고쳐 약간 미지근한 물에 했으며 샤워를 할 때도 샤워 꼭지를 끝까지 돌리지 않고 3분의 2만 틀어서 사용했다. 여름에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이용했고, 히터 같은 건 틀지도 않았다. (순간 히터기는 놀랍도록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 에어컨보다 이게 훨씬 더하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날라오는 일정 금액 이상 구매고객에게 주는 사은품을 고를 때. 주로 쓰잘 없는 접시나 쟁반 같은걸 고르곤 했었는데 그 습관도 바꾸었다. 무조건 돈이 들어가는 소모품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화장지, 치약, 세제 같은걸 받기 시작하자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었다. 또 세탁 세제는 주로 대용량을 사기 때문에 가루로 된 것은 나중에 굳어서 쓰기 힘들어, 고농축 액상용을 사서 정량만 넣었다.(빨래를 깨끗하게 하겠답시고 세제를 필요 이상으로 들이붓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건 환경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이다.) 또 분리 수거도 철저히 해서 쓰레기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알고 보니 꽤 많은 제품 포장지에 분리수거 마크가 있었고, 그것만 제대로 버려도 쓰레기봉투를 줄일 수 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때는 담배도 끊었었다. 1천 5백만 원을 다 갚기 전 까지 담배는 사치품이었다. (그 참에 끊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완전한 금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훗날 글로 먹고 살게 되면서부터 다시 담배를 찾게 되었다.)
돈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계부를 쓰는 것이다. 가계부를 쓰나 안 쓰나 들어가는 돈은 똑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다시 돌아보며 반성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무턱대고 쓰던 생활비를 1주일 단위로 쪼개어 쓰고, 거기서 남는 잔돈 같은 것은 따로 저금했다. 예전에는 무식할 만큼 큰 빨간 돼지 저금통에 저금을 했었는데, 잔돈을 단위 별로 작은 유리병에 모으니 훨씬 더 빨리 모였다. 큰 돼지 저금통은 ‘저걸 언제 다 채우냐. 늙어 죽기 전에 따 보기나 하겠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는데. 투명한 유리병에 모으니 맘이 달라졌다. ‘그래 빨리 저 병을 다 채워서 은행가야지’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뀌고 나니 저금을 하면서 기분도 좋아졌다.
그리고 단 하나뿐이었던 통장이, 목적 별로 여러 개 늘어나기 시작했다. 돈을 6개월 단위, 1년 단위, 3년 단위로 모을 것을 나누고. 이 적금들은 또 다시 금리가 높은 예금상품에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려 통장이 다섯 개로 늘어났다. 물론 통장이 여러 개 라고 그 개수만큼 돈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계획적으로 돈을 모으고, 각종 금리가 높은 금융 상품 정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훨씬 빨리 돈이 모였다. 예전에는 적금을 들 때. 많은 금액을 불입할게 아니라면 창피해서 안 만들곤 했었는데, 심지어 월 만원씩 넣는 통장도 전혀 쪽팔려하지 않으며 만들게 되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펑펑 쓰느라 한 달에 만 원도 저금 못 하고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게 쪽팔리는 거지. 절대 적은 돈을 저금한다고 해서 쪽팔리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돈을 모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낄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최대한 아낀다는 것이다. 물론 꼭 써야 할 때는 돈을 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돈을 억 단위로 모은 누군가처럼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원형 탈모 같은 게 올 정도로 독해질 필요는 없다. 나는 저렇게 모으면서도 여전히 책을 사 보고, 영화를 보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계속했다. 다만 책은 인터넷에서 적립금과 할인 쿠폰으로 저렴하게 사고, 영화는 현금 보다는 할인되는 신용카드를 이용함과 동시에 적립금을 꼬박꼬박 쌓았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내가 요즘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만약 친한 친구라면 나의 절약을 적극적으로 도와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는 필요 없지만 내게는 요긴한 물건들을 넘겨주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돈을 낼 차례임에도 선심을 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매우 친한 친구들한테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살던 시간의 대부분을 저축과는 무관하게 살았었다. 어렸을 때는 저축을 하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이건 순전히 부모님들 덕분이었다. 그들이 나를 먹이고 입혔기에 나는 돈이 궁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살고 나니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 년 내내 아끼고 저축만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낭비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돈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 돈이 없으면, 간혹 마음과 달리 사람 노릇 하는 것도,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다. 선물은 정성 이라고 말 하지만 그 정성도 돈이 있어야 가능 한 것이다.
간혹 혼자 사는 어린 친구들 중에서 생각 없이 돈을 물 쓰듯 쓰다가 월말에는 땡전 한 푼 없이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가 똑 같은 과정을 겪어왔다고 해서 ‘너 그렇게 살면 큰일 나’ 따위의 어설픈 충고는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건 자기 스스로 느끼기 전 까지는 엄마의 아껴 쓰라는 잔소리와 똑 같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못 하다. 엄마는 그러려니 하지만, 이건 웬 늙은 노처녀가 무슨 상관이라고 잔소리람? 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마음으로 기원한다. 빨리 깨닫기를.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그 힘든 마이너스 인생에서 벗어나길. 하나 더 바라도 된다면 그들은 나보다 조금 더 일찍 깨닫는 똘똘한 이들이기를...................반짝반짝 연애통신 ☞클릭!! 인터넷부업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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