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변명이십니다’
그렇다. 저런 말들은 모두 비겁한 변명으로 혹은 구차하고 이기적인 변명으로 들린다. 적어도 ‘이별을 당하는 자’ 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미울망정 차라리 싫어졌다고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떠난다고 말하는 그의 뒷모습은 정직하기나 하지.
마니아 팬 층을 거느린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에세이가 나왔다. 그간 노희경의 드라마를 매 번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드라마, 적어도 막장 설정 없이 인간을 얘기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해서 새로 나올 때 마다 관심을 갖고 지켜봤었다. 가장 최근 노작가의 드라마는 ‘그들이 사는 세상’ 이라는 드라마로 방송국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드라마 역시 노희경 표 사랑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감성을 섬세하게 뒤쫓아 가며 어느 한 쪽의 입장만이 아닌 사랑하는 두 사람의 입장을 다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그리고 약간은 특이하게도 이미 헤어진 남녀가 다시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허나 흥미라 함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흥미 위주의 설정을 해서가 아닌 제법 그럴듯한, 그러니까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닌 우리들도 충분히 겪을법한 이야기들을 무리 없이 진행했기 때문에 생긴 흥미로움이었다.
이 책은 저자에게 증정을 받은 것이다. 책의 앞장에는 저자가 직접 사인을 해 주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 사랑도’
과연 그럴까? 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사랑도 아름답게 할 수 있을까? 지난 내 연애를 뒤돌아보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추잡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특히나 이별할 때.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면서도 나 역시 이별하는 이유를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비겁하게 외면만 했었다. 관계의 정리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어서 빨리 이 연애를 끝내고 새로운 연애를 하고 싶은 욕심에.
노희경은 자신의 첫 사랑 얘기를 들려준다. 있었던 사실의 나열 위주가 아닌 자신의 심경을 중심으로 고백한 사랑 얘기라서 어떻게 사랑했는지 혹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헤어지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헤어지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힘들었던 이유는 순전히 헤어진 사랑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음을 말한다. 저자는 스무 살 겨울 사랑하는 사람에게 헤어짐을 통보 받고 그가 오지 않을 빈 집 앞에 서서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하염없이 기다린다. 내가 이렇게 너 때문에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생각한다. 그때 나를 차 주어서 고마웠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무척 아픈 일이다. 서로 합의에 의한 헤어짐이라 해도 아프겠지만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이별이라면 그 아픔은 더 클 것이다. 내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배신감 때문에 아픈 것이다. 니가 나를 버리다니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누워있어도 잠이 오지 않으며 끼니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보여주고 싶다고 아마 지금 나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있다면 너는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다시 내게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이별을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사랑이다. 내게 사랑이 남아있지 않아서 또는 나와의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그가 돌아온다면 아직 나를 사랑하고 있거나 우리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희경은 8년 후에 헤어진 그 사람을 다시 본다. 그 사이에 두 번 정도 사랑을 했으면서도 그녀는 그에게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고 말한다. 그러자 상대방은 말한다. 왜 너는 그렇게 순정적인데 나는 이 모양이냐고, 지금 사랑하는 누군가와도 나는 또 시들해진다고. 그러다 다시 6년 뒤 그를 본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하는 사랑이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그녀는 훈계를 한다. 이로써 그녀는 마음이 변한 그를 속죄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첫 사랑에서 20년이나 지나서 알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이 변하는 것이 큰 죄가 아님을 말이다. 그녀는 마음이 변한 것이 죄라 생각했기에 그를 괴롭히고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괴롭혔다. 첫 사랑을 20년이나 끌어 온 것이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 받은 적이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이별의 징후 같은 건 아쉽게도 없었다. 그저 내게는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너만 끝나면 다냐고. 나는 아직 아무 준비도 없고 받아들일 생각조차 없는데 니 마음이 변했다고 어째서 둘이 같이 한 사랑을 끝내야 하냐고. 그래서 나는 계속 헤어진 연인의 곁에 얼쩡거렸었다. 그쪽 입장에서는 헤어진 사람이 계속 나타나니 거의 스토킹을 당하는 기분이었겠지만 나는 내 순수와 사랑을 증명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마음이 변해버렸다. 사랑? 까짓 새로 시작하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생일대의 사랑이라고 믿었고 이 사랑 없으면 살 수 없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오랜 시간에 걸쳐 드는 것이 아닌 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나를 버린 연인도 그 한 순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더라도 적어도 추하지 않게 이별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마음이 변한 것을 탓하지 않고 사람도 변하는데 마음이 왜 변하지 않겠느냐는 이해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이별이 조금쯤은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살아가면서 앞으로 해야 할 수많은 사랑과 또 지나왔던 사랑들을 모두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약속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아름답다면 이별도 아름다울 수 있다. 잘 가라고 보내주고 한때나마 내가 정말 사랑한 사람이었으니 내내 어디선가 나 없이도 사랑 받으며 잘 살라고 생각해주는 것. 그리고 나 역시도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이별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만남은 언제나 이별을 예고편으로 깔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관계 같은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다만 사랑할 때 그 순간만큼은 영원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사랑하다가 사랑이 끝이 나면 영원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 그것이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반짝반짝연애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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