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대해 사람들은 두 가지 생각을 갖고 있다. 첫째는 인연은 반드시 있다는 것, 그래서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만날 사람들은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말한다. 대부분의 인연이 같은 학교, 직장 혹은 그 밖에 본인의 행동반경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찾게 된다고. 그래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다기 보다 필요에 의해 그 사람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첨밀밀이라는 홍콩영화에 질긴 인연을 가진 연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만났다가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끝내는 서로가 서로의 인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랑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만 그런 게 아니라 두 사람 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긴 세월을 돌아 왔지만 나의 진정한 사랑은 이 사람이라는 확신을 다시 갖게 되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현실에서는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홍콩. 어리숙하게 보이는 여소군(여명) 은 돈을 벌어 중국에 있는 애인 소명과 함께 결혼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이제 막 홍콩에 상경한다. 소군은 아가씨 장사를 하는 고모네에 얹혀살면서 배달 일을 하게 된다. 드디어 월급날. 소군은 큰맘 먹고 맥도날드에 햄버거를 사 먹으러 간다. 그리고 거기서 맥도날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이요를 만나게 된다. 어리버리한 소군과는 달리 홍콩 사람처럼 보이는 이요는 사실 소군과 같은 중국 사람이다. 악착같은 이요는 직업을 몇 개나 가지고 착실하게 돈을 모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군을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홍콩에서 사는 법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둘은 친구로 지내게 된다.
큰 행사에서 등려군의 사진과 음악 테이프를 파는 장사를 하기로 한 이요. 그러나 홍콩 사람들은 아무도 등려군에게 관심이 없다. 큰돈을 잃게 된 이요와 소군은 함께 소군의 집에서 떡국을 먹는다. 그러다 두 사람은 관계를 갖게 된다. 그러나 다음날 이요는 여전히 소군을 차갑게 대한다. 여자는 몸이 가면 마음이 간다는 이론이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 이요와 소군은 함께 잠자리를 갖는 친구 사이가 된다. 물론 그것은 소군의 뜻이라기보다는 이요의 뜻이다. 소군은 그저 이요가 하자는 대로 묵묵히 이요의 곁을 지킨다.
그러던 어느날 이요는 주식투자를 해서 가진 돈을 다 날리는 것은 물론 빚까지 지게 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안마사로 취직을 하게 된다. 이 상황은 둘의 사이를 점점 멀어지게 한다. 이요는 돈이 필요하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야망을 가진 여자였지만 소군은 소박한 꿈을 가진 남자였기 때문이다. 이요는 손님으로 온 표와 사귀게 되고, 소군은 본토에서 애인을 불러 결혼을 하게 된다.
이쯤 되면 소군과 이요의 사랑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한 여성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어둠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남자와 사귀고, 한 남자는 자신의 작은 꿈대로 오랜 연인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외면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가서야 자신들이 서로를 사랑했음을, 그리고 서로를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각자의 파트너에게 이별을 고하기로 한다. 그러나 일이 꼬여서 이들은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 준 것은 등려군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전파상에 진열된 TV 앞이었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둘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는 인연이었던 것이다.
사랑이 사랑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 흔히 우리가 조건으로 부르는 것들이 충족되지 않아도, 혹은 서로에게 이미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연결되어 마땅한 사람들이 그저 친구나 남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만약 인연이 아니라면 억지로 서로 만난다 하더라도 결국은 오래가지 못한다. 평소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지만 첨밀밀을 보니 인연의 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정말로 어떤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꼭 만나게 되는 것일까? 소군과 이요는 그렇게 많은 장애물을 넘고 결국은 서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들이 실은 함께 같은 기차의 앞뒤좌석에 앉아 고향에서 홍콩으로 상경했음을 보여줌으로써 서로의 인연이 서로가 알지 못했던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런 인연이 있는 것일까?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와 얼마나 비슷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만인들이 다 좋아하는 커피를 같이 좋아하는 것도 특별한 일이 되며,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천생연분의 증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과장되고 그 의미는 한없이 부풀려진다. 그만큼 사람들은 인연을 좋아한다. 단지 이 순간에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 너와 나는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운명을 확인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 운명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다만 믿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운명이라고, 그래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고, 그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진짜로 운명이 있건 없건은 어쩌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만나는 동안에는 인연이며 운명의 상대라고 믿는 것이다. 강퍅한 현실에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연애에는 많은 눈가림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또 스스로를 속이는 동시에 그것을 믿는다. 사랑은 그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실이건 진실이 아니건은 중요하지 않다. 그 진실이 저 너머 어딘가에 있다 해도, 사랑하는 연인들은 굳이 그 너머를 알 필요가 없다. 그저 세상의 모든 사랑은 운명이라고 믿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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