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일 화요일

안젤리나 졸리처럼 빨간 립스틱을 칠할 수 있을까...

지난 일요일 모처럼 부모님께서 계신 시골집에 내려갔다. 두 분은 늘 입버릇처럼 늙으면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난 봄 드디어 실천에 옮기셨다.
말이 시골이지 도심에서 한 시간 20분이면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나는 그 동안 갖은 핑계를 대고 도통 집에 내려가질 않았다. 하긴 같은 도시 안에 살 때도 나는 결코 자주라 할 수 없이 어쩌다 방문하는 손님 같은 존재였다만.
 

내려가면서 혹시나 심심할까 봐 노트북을 챙겨가면서 DVD도 두어 편 빌려서 갔는데 (그렇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인간이 절대 아닌 것이다.) 하나는 안젤리나 졸리가 나오는 체인질링, 또 하나는 슬럼독 밀레니어였다. 그러나 슬럼독 밀레니어는 CD에 금이라도 갔는지 계속 타이틀 롤만 반복되는 바람에, 체인질링을 다 보고 난 다음 스테로이드 박이 보려고 빌려놓은 그 놈 목소리를 같이 보게 되었다. (강동원의 광 팬인 스테로이드 박은 그 놈의 목소리라도 들어야겠다며 영화를 빌렸다고 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두 영화는 소재가 비슷했다. 평온했던 가정에 아이가 실종되면서 부모가 겪게 되는 고통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체인질링은 범인의 협박 전화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범인은 잡혔다는 것, 그 놈 목소리에서는 협박 전화도 걸려오고 수사도 했지만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것이 다른 정도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스테로이드 박은 나와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말했다.
‘근데 말이야, 안젤리나 졸리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애가 없어지고, 그 애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빨간 립스틱에 진한 눈 화장이 웬 말이니? 그게 그럴 수가 있는 건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우리가 애는 안 낳아봤지만 말이야. 만약에 우리 조카 중에 하나가 없어졌다면 언닌 화장 할 정신이 있을 것 같아?’

생각해보니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우리 오빠나 언니의 아들 딸 중 한 명이 실종되었다 해도 아마 나는 화장을 안, 아니 못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하물며 내 자식이 없어졌다고 가정한다면 화장? 아마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언젠가 그 놈 목소리를 찍을 당시 김남주의 인터뷰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낳은 엄마인데 그런 영화를 찍으려니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매일 차를 몰고 한강변에 나가서 실컷 울다가 왔다고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김남주가 마음이 너무 아파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때려 든 멍은 실제로 든 멍이라고 했다. 뭐 그게 영화를 좀 더 흥행시켜 보려는 홍보 팀의 과장이건 실제이건 간에 영화 속에서의 김남주는 정말로 아이를 잃은, 그래서 반쯤은 실성한 여자처럼 보였다. 사실 김남주는 화장 안하고 보기에는 성형발이 좀 심하게 드러나는 편이고 작은 입술도 늘 메이컵으로 크게 그리기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 그런 맨 얼굴 연기는 좀처럼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도 크고 입술도 썰면 한 접시는 나올 것 같은 안젤리나 졸리는 정신병원에 갇혔을 때 빼고는 계속해서 빨간 립스틱과 진한 눈 화장을 한 상태였다. 시대를 반영하느라 그랬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졸리의 모자와 의상도 지나치게 패셔너블했다. 물론 안젤리나 졸리가 예쁘게 나오는 것에 불만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졸리는 붕붕 날아다니는 여전사나 남편을 속인 킬러가 아니라 단 하나뿐인 혈육을 잃은 엄마라는 것이 문제이다. 더구나 아이의 아빠는 아이가 생기자마자 배달된 ‘책임’ 이라는 커다란 택배 상자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떠났기에 혼자서 낳아 기른 아이가 아니던가 말이다.

 


나는 모성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일 때문에 몇 권의 모성신화에 관한 책이나 엄마가 잘 해야 아이가 잘 자라요 같은 책을 읽기는 했지만 그건 아마 책으로 읽어 습득되는 형태의 지식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경험 해 보지 않았다고 해서 완전히 아무것도 상상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부모와 나의 관계 그리고 주변에 수많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부부들을 속에 섞여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식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잃어버린 어미는 반쯤 미친 모양을 하고 평생 죄인처럼 웃지도 말고 그저 눈물 바람으로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애가 없어진 다음날도 애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도 안젤리나 졸리는 내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패셔너블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서 자식을 잃은 엄마의 그 어떤 절박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미국과 우리의 문화 차이라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문화의 차이라기보다는 안젤리나 졸리나 혹은 연출자의 미스가 아니었나 싶다.


그에 비해 김남주는 늘 세련되고 도회적이었던 그간의 이미지와 달리 그 영화에서는 정말 로 슬퍼 보였다. 아니 슬프려고 노력은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졸리처럼 잘 차려 입지도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오지도 않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아마 여배우의 아름다움은 화면에서 얼마나 얼굴이 예쁘게 나오는가가 아닌, 그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 모습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달린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김남주는 실로 아름다웠다. 비록 영화의 구성이 좀 삐걱거려서 감정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녀 하나 만으로도 그 영화는 충분히 슬프고 아픈 영화였다.


내친김에 나는 실제로 애 엄마인 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만약 자식이 실종이 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 혹시 화장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녀는 미치면 그렇지 않을까? 하다가 다시 정정해서 아니라고 했다. 화장을 하려면 거울을 봐야 하고, 거울을 보면 당연히 자신을 닮은 자식이 떠오를 것인데 거기서 어떻게 입술을 칠하고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올리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에서 자식의 얼굴을 보는 것. 그렇다면 그 자식이 없어졌을 때 과연 안젤리나 졸리처럼 빨간 립스틱과 짙은 아이쉐도우를 칠할 수 있을까?


안젤리나 졸리는 알다시피 브레드피트와 아이도 낳았고 또 여러 인종의 아이들을 입양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는 그녀가 살아있는 모성신화의 표본 또는 사랑 실천의 대가처럼 보였었다. 아이야 낳을 수 있다지만 입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어쩐지 체인질링을 보고 나니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그녀가 원래 모성을 알았건 몰랐건은 고사하고 저 영화를 찍으면서 한번이라도 내 자식이 없어졌다면 하는 생각을 해 봤을까? 아마 그랬다면 틀림없이 그녀는 감독에게 말했을 것이다.
‘아니 애가 없어졌는데 화장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요? 털 달린 코트와 이 모자는 또 뭐구요? 메이컵과 의상을 다시 결정하기 전에는 전 이 영화 못 찍겠어요’
그래. 적어도 안젤리나 졸리는 그랬어야 했다. 아니면 계속 그 몸과 얼굴에 어울리는 예쁘고 멋있는 역할만 하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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