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6일 화요일

나를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죽을 수가 있냐고..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당시의 내 나이는 어렸었다. 물론 그때는 스스로 어리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이 영화를 보니 그때의 나는 분명 어렸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으므로 분명 그때의 나는 어렸었다.


알콜 중독인 남자가 있다. 그는 그것 때문에 직장도 잃고 아내와도 헤어지게 된다.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돈을 털어 남자는 라스베가스로 향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가득 사가지고서. 남자는 거리에서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거리의 여자, 즉 몸을 파는 여성이다. 벤 (니콜라스 케이지) 는 라스베가스에 살기 위해서가 아닌 죽으러 갔다. 그는 거기서 술을 마시다가 여생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에게 다가온 여자 세라 (엘리자베스 슈) 는 유리라는 애인 겸 포주에게 착취를 당하며 살고 있다. 첫 번째 만남은 우연이지만 두 번째 만남은 벤이 찾아가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벤은 여자를 돈 주고 사겠다는 것이 아닌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세라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육체가 아닌 마음을 원하는 남자를 보고 사랑과 연민을 느낀다.


세라는 벤에게 알콜 중독 치료를 받으라던가 술을 끊으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벤은 세라에게 거리로 나가서 몸을 파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있는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 아무것도 바꾸려 들거나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살던 삶을 살되 거기에 사랑이 하나 더 추가될 뿐인 사랑을 한다.


 

 사랑하던 사람과 가장 많이 싸우는 이유는 아마도 서로의 무엇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는 왜 술을 마시러 가면 전화하지 않는지, 그녀는 왜 밤 늦게 친구를 만나려고 하는지. 그녀는 술을 마시러 나간 그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를 ‘자주 전화해서 상황을 보고하는 남자’로 바꾸려고 한다. 그는 세상이 험하고, 남자는 다 늑대기 때문에 자신의 그녀를 안전하게 지킨다는 명목 하에 그녀의 귀가 시간을 체크한다. 서로를 바꾸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자신을 바꾸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는 점점 더 많이 싸우게 된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같은 점 보다는 다른 점이 보이고, 그 다른 점을 그들은 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바꾸려고 드는 저변에는 내가 옳다는 이기심이 깔려있다. 나의 간섭은 간섭이 아닌 관심이며, 나의 잔소리는 잔소리가 아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 혹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사랑의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점점 서로의 이기심에 지쳐간다. 그를 바꾸지 못해서 지치고, 그가 나를 바꾸려 하는 것이 지친다.
 

영화는 세라가 벤이 죽은 이후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벤은 정말 그의 소원대로 술을 마시다가 죽는다. 그리고 세라는 혼자 남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세라가 거리의 일을 관두고 죽은 벤만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아무 여한이 없이 서로 사랑을 했기 때문에 이별을 했어도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도 모른다. 마치 세라는 벤이 살아있지만 잠깐 어딘가로 먼 여행을 떠난 것처럼 그렇게 벤을 마음에 품고 산다. 그립지만 슬퍼하지는 않고 보고 싶지만 아파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지난날을 오래 추억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어차피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그 이기적인, 태곳적부터 간직한 동물적 본능을 억누를 정도로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아무 조건 없이, 혹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바꾸려 들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나는 아마 사랑하는 이의 많은 것을 바꾸거나 고치려고 들 것이다. 내 말이 옳아서, 혹은 내 말대로 하는 게 더 좋다는 것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적절히 섞어 가면서 간섭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상대방도 나를 바꾸고 고치려고 들 것이다. 그녀는 또 그녀대로 그것이 옳은 일이라 믿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전부를 빠짐없이 사랑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만나기 전에 가져왔던 습성과 특징을 나에게 맞게 바꾼다면 그건 이미 그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바뀌어진 사람은 내 입맛에 딱 맞는 사람은 되어있겠지만 그 사람 자신으로써의 정체성은 잃어버린 것이다.

  

 

  오래 산 부부들은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저 사람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그저 이게 내 팔짜려니 하고 산다고. 언뜻 들으면 자조적으로 들리지만 이 말에는 진리가 숨어있다. 그것은 사람은 바꾸려고 해서도 안되고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 움직이기 전에 외부의 물리적인 압력에 의해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아마 그 부부들도 처음에는 서로의 단점이라 생각되는 부분,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술을 적게 마셔라,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해라, 돈을 아껴써라. 생각해보면 부부만큼 싸울 일이 많은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서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은 어떤 시간에도 존재하는 장소와 같은 것이라서 매번 바꾸어야 할 문제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래 산 부부들은 지혜를 갖게 된다. 사람을 바꾸려 하기 보다는 내가 적응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장점이든 단점이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을, 삶을, 일생을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라가 벤에게 술을 끊으라고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냥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아닌 이제 술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냥 두는 것은 사랑이 아닌 방임이 아닐까? 세라에게 거리로 나가는 것을 그만두게 하지 않는 벤이 이상했다. 내가 벤이라면 당장 술을 끊고 세라가 더 이상 다른 남자들의 품에 안기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돈을 벌어 왔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세라에게 직업전문 무료 학교 같은 곳이라도 다니라고 했겠지. 그리고 세상에는 몸을 파는 것 이외에도 돈을 벌고 살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많다고 설득을 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설득으로 되지 않았을 때는? 그때는 아마 싸움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너는 어째서 나를 사랑하고 나와 함께 살면서 다른 남자를 품을 수 있냐고, 그렇게 다른 남자를 안은 팔로 나를 안지 말라고.

 

  

세라 역시 벤에게 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죽을 수가 있냐고, 이 세상에 나만 남겨두고, 다른 이유도 아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죽는 게 말이냐 되냐고. 그렇게 책임감 없이 굴려거든 사랑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자고. 그러나 세라도 벤도 서로에게 그러지 않는다. 처음에는 막장 인생이라서 서로 간섭할 이유가 없나 했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막장 인생들이 더 많은 싸움을 한다. 서로에게 더 많은 불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사랑을 한다면 벤과 세라만큼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조금쯤은 덜 잔소리를 하고 덜 간섭을 해야겠다. 그리고 사랑하는 동안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는. 내가 바꾸려고 드는 모습이 아닌 그 이전의 모습이었을 때도 내가 사랑한 사람임을 말이다. 나의 손길이나 간섭이 닿기 이전 그 모습. 있는 그대로를 사랑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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