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8일 목요일

너무 섹시해서 확 넘어뜨리고 싶은 충동을 .....

나는 모임 같은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매번 적용되는 특정한 날, 특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는 것은 두 사람 일 때만 수월한 일이다. 거기서 셋이 되고 넷이 넘어가게 되면 그 중 누군가는 반드시 그 모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 같은 게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게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다 보면 어느 날 모임은 소리 소문도 없이 스르르 사라진다. 그리고 대게의 모임이라는 것은 시작할 때의 취지와 달리 점점 잘 나가는 누군가들을 구심점으로 해서 언더와 오버가 생긴다. 따라서 나는 모임 같은데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수년 전부터 꾸준하게 참석하고 있는 모임이 딱 하나 있다. 몇 몇 마음 맞는 친구들과 만든, 뭐라 붙여진 이름도 없는 모임인데 매월 마지막 날 밤 11시에 우리 중 누군가의 집에서 갖는 모임이다. 주로 술이 동반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이 주가 되는 모임은 아니다. 매월 말일의 마지막 밤이 주말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 모임은 기본적으로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인간들은 알아서 옷과 가방을 챙겨온다.


집 주인은 장소와 기타 등등의 편의를 제공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술이나 안주를 싸 들고 온다. 처음에는 집 주인이 요리를 하는 시스템으로 나갔었는데 그러다 보니 요리를 하는 동안 우리들은 이미 이야기를 시작했거나 술을 마시게 되므로 집 주인이 처음부터 참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요리 같은 건 하지 않고 접시에 펼치면 되게 미리 적당한 음식들을 싸오게 되었다. 술의 종류는 상관이 없다. 어떤 날은 맥주이기도 했다가 또 때마침 그 날 비가 오면 막걸 리가 되기도 한다. 11월 30일의 모임에 술은 소주였다. 그 중 한 명의 남자친구가 포항에 놀러 갔다가 과메기를 사 왔기 때문이었다.


모임의 멤버는 총 다섯 명. (더 이상 숫자를 늘이지 않는 이유는 보통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다섯 명 이상 잠을 잘 공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나가는 친구 A. 영화 잡지사에서 기자로 근무하는 친구 B. 수입 의류 편집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 C. 증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 D.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다. 친구 B와 내 경우는 같이 글을 쓴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친구들을 보면 우리 사이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 그러나 어쩌면 이 무공통점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결속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이 자리에서는 우리는 일 얘기도 돈 얘기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 버는 수준이 많이 다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의 공통분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C를 제외하면 정상적이고도 평범한 직장인 (마감 때면 날밤을 새고 마감 끝나면 3일씩 회사를 쉬는 B는 제외다.) 은 아무도 없다.


우리들의 모임은 아무 목적이 없다. 여름 휴가철이면 쌈짓돈을 모아서 같이 해외여행을 가지도 않고, 음악회나 전시회를 쫓아 다니지도 않으며, 누군가를 계주로 정한 다음 돈을 모으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란 돌아가면서 집을 제공하고, 술을 마시고, 얘기를 하는 것뿐이다. 밖에서 가끔 만나기도 하지만 멤버 전원이 모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 모임에 누군가를 데려오는 일도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 다섯명이서 한 달에 한번쯤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잠이 들고 싶을 뿐이다.


가끔 이 모임을 파자마 파티 같은 걸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글쎄다. 우리 중 아무도 파자마를 갖고 오지 않을뿐더러 (그 정도의 편한 옷은 집 주인이 얼마든지 제공 가능하다.) 대게 그런 모임의 영상에 등장하기 마련인 머리에 셋팅기를 말고 있는 이도 없다. 처음부터 모임을 주도한 사람도 없으며, 굳이 날짜를 정하려고 애쓰지 않았지만 제일 기억하기 좋은 날이 저절로 정해졌다. 밤 11시라는 비교적 늦은 시간이 정해진 이유도 우리들이 각자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시간이어서 그냥 그렇게 굳혀진 것이었다.


우리가 나누는 얘기들은 대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다. 누군가가 연애를 시작하면 남자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간혹 영화나 드라마가 소재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에는 어울리지 않게 시국을 논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하지만 분위기가 심각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리들이 워낙 심각한 걸 싫어하는 인간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그런 자리에서조차 심각해질 만큼 진지한 인간들이 아니다. 대게는 웃고 떠들고 누구 하나는 웃다가 끝내 ‘나 눈물 나’ 하며 넘어간다. 가만 보면 웃는 것도 참 제 각각이다. 나는 웃을 때 박수를 치며 옆으로 쓰러지고 친구 A는 땅바닥을 치며, B는 진짜 웃기면 지 이마를 때리고, C는 옆에 앉은 누군가를 때리며 웃고, D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다.


참 이상한 건 그렇게 쓰러지거나 눈물이 날 만큼 웃었으면서 아침이면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대체 우리가 전날 밤 왜 그렇게 웃었는지, 무슨 얘기를 해서 그렇게 웃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모임의 아침은 거의 동시에 잠이 들었던 지난밤과 달리 일어나는 시간이 모두 다르다. 당연하지만 집 주인이 가장 늦게 일어난다. 그리고 출근을 해야 하는 C의 경우 언제나 제일 일찍 일어난다. 집에 갈 때 우리는 별 말 없이 알아서들 간다. 마침 일이 없는 사람은 늦게까지 집 주인과 남아서 아침 겸 점심 해장국을 끓여먹고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나가야 할 시간에 굳이 잠들어 있는 나머지를 깨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진다.


지난 11월 30일 모임에서 우리의 대화 주제는 Sex였다. 어쩌다 얘기가 그쪽으로 흘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교적 보수적이고 얌전해 보였던 B가 입에 날개를 달았나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번쩍 하고 빛나는 썰들을 풀어놓았고 나머지 우리들은 배를 잡고 굴러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남자의 외모만 보면 대충 사이즈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을 해서 우리들을 놀라게 했고, 또 우리들의 섹스 스타일을 족집게처럼 맞춰서 또 한 번 우릴 기절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의 그 섹스 판타지들이 등장했다. 한 가지 쪽 팔리는 건 내가 섹스 판타지랍시고 비가 오는 날 차 안에서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해 보고 싶다고 했다가 친구들에게 ‘왜 일상을 가지고 판타지랍시고 난리냐’ ‘그러고도 니가 연애를 우려먹어 밥벌이를 하느냐’는 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뭐 더 큰 문제는 비가 오는 날 뿐 아니라 비가 오지 않는 날 조차도 나는 차 안에서 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남자가 너무 섹시하게 느껴져서 확 쓰러트리고 싶은 적이 있었냐는 질문에 A는 가르치는 학생 중 하나를 처음 봤을 때 악기를 확 집어 던지고 다른 걸 연주하고 싶었다고 해서 우리들을 웃겼다. 그런데 문제는 레슨 받는 그 학생이 고딩이었다나? D는 2PM과 샤이니만 보면 TV안에서 그 애들을 끄집어내고 싶다고 했으며, 나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남자를 보면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다고 했고, 친구 B는 후진할 때 살짝 보이는 남자의 턱선과 목선만 보면 당장이라도 후미진 골목을 찾아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어쩌다보니 얘기가 Sex로 흘러갔지만 대개의 우리들은 매우 건전하고도 발전적인 주제로 얘기를... 한다기 보다 쓰잘 없는 얘기들을 한다. 아무짝에도 필요 없지만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꼭 무슨 짝에 필요한 일들만 하고 살 수는 없다며, 우리는 아침이면 생각도 나지 않는 얘기들로 웃고 떠든다. 만약 이 다섯 명 중에서 누군가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우리의 모임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다섯 명은 이런 이름도 없고 목적도 없는 할랑한 모임을 가지기에 너무도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멤버들이니 말이다.

 


우리 모임의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그건 바로 ‘아님 말고’ 의 자세를 갖고 사는 거다. 우리는 아무도 독하지 않다. 이 세상과 맞짱을 뜰 만큼 배포도 크지 않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하면서 두 주먹 불끈 쥐고 어금니 꽉 깨물며 사는 인간도 없다. 물론 각자의 자리에서 ‘저거 언젠가는 짤라야 하는데’ 라는 눈빛을 받지 않을 만큼은 하고 살지만 그 이상의 욕심은 없다. 어쩌면 우리가 그런 것은 20대가 아닌 이미 서른 하고도 한참을 넘긴 나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외롭다는 것을 충분하게 잘 견뎌온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외로운 게 무섭지 않아야 ‘안 되면 될 때까지’가 아닌 ‘아님 말고’ 의 정신으로 살 수 있다.


이제 다음 번 우리들의 모임은 1년 중 딱 한번. 각자의 장소에서 출발해서 누군가의 집에 집결하는 방식이 아닌, 한 장소에서 모여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날이다. 우리가 목적도 두서도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12월 31일마저 그렇게 보낼 수 있을 만큼 무덤덤한 인간들은 아니다. 매 해 우리들은 함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 소망을 빌었다. 해가 지날수록 우리들의 소원은 조금씩 더 보잘 것 없어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들의 이 보잘것없는 시간들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며, 이것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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