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2일 금요일

유행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반에서 절반 정도의 여자 아이들은 돌 청을 입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재즈 바지를 입었었다. 나 역시 돌 청과 재즈바지를 모두 갖고 있었더랬다. 그러나 그 옷들을 결코 좋아하지는 않았다. 재즈 바지는 편하기는 했지만 발목 부분이 약해 보여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히지 않은 것 같았고 (역삼각형 라인은 지금도 무척 싫어한다.) 돌 청은 뭐랄까 그 규정할 수 없는 패턴의 무늬가 다만 정신 사나워 보일 뿐이었다. 어느 날에는 엄마가 돌 청바지에 돌 청 재킷을 같이 입으라고 내줘서 정말 기암 할 것 같았지만 ‘옷 타령하는 아이 = 머리에 든 것 없고 공부 못하는 아이’ 라는 괴상한 공식을 믿고 있었던 엄마에게 도저히 이 옷만은 못 입겠다고 버텨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무렵 유달리 키가 컸던 한 여학생은 돌 청바지에 금다래 신머루 T셔츠 (문구회사인 바른손에서 나온 T셔츠였다.) 입고 있었는데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거의 기절할 뻔 했었다. 초등학교 때 유행하던 돌 청에, 중학교 매점에서나 팔던 금다래 신머루 티셔츠라니. 나는 그 애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만약 그 여자애가 아직까지 옷장 속에 돌 청을 보관해뒀더라면 패션을 앞서간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애는 대학 2학년 때 슈퍼모델이 되었다. 슈퍼모델이 된 직후 사자파마머리와 양파 망 같은 빨간 시스루룩 블라우스에 블랙 재즈바지를 입고 학교에 왔던 게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유행은 돌고 돈다. 패션에서는 대충 10년에서 15년을 주기로 유행이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이 공식에 따르면 아무리 구닥다리 옷이라 하더라도 15년쯤 푹 썩혀두었다가 다시 꺼내 입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유행도 있다. 이를테면 일명 땡땡이로 불리는 도트무늬 원피스라던가 (여기에 같은 소재의 헤어 밴드까지 하면 주변사람 여럿 보낼 수 있다.) 돌 청, 재즈바지, 나팔바지. 그리고 현재 엣지녀들 (이 단어는 정말이지 속이 좋지 않다.) 의 최고 아이템인 발맹 스타일의 재킷들이 그것이다.


발맹 재킷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70년대 보이조지가 환생한 줄 알았다. 어깨 뽕만은 정말이지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것마저 기어이 돌아왔다. 패션 아이템은 한번 유행이 끝났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하긴, 인체가 소화 가능한 한도 내에서 매번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간혹 이런 상상을 한다. 전 세계 유행을 선도하는 유수의 디자이너들이 모월 모시. 은밀하게 회동을 갖는 거다. 어두컴컴한 회의실에서 그들은 20년도 더 지난 패션지들을 뒤적이며 올해의 유행을 결정한다. 이를테면 회의에 참석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이 ‘어깨 뽕, 이거 어때요?’ 하면 또 누군가는 ‘으음... 단지 뽕만 들어가면 심심하니까 이번에는 하늘높이 치켜 세워보죠’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나도 유행을 따라간다. 아니 겨우겨우 따라잡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따르고 싶지 않은 유행들도 있다. 나팔바지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는, 처녀적의 엄마가 바다를 배경으로 우산만한 모자와 얼굴의 3분의 2는 가릴 듯 한 오버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흑백 사진이 떠올랐으며 (그때 제일 괴상했던 게 나팔바지였다.) 도트 무늬가 유행할 때는 차라리 몬드리안 룩이 낫겠다 싶었다. (물론 이것도 옷이 캔버스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돌체 앤 가바나나 마크 제이콥스, 안나 몰리나리 같은 디자이너들은 늘 재기발랄한 옷을 내어놓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결코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면, 그것이 가방이나 구두가 아닌 옷이라면 차라리 클래식한 아이템을 내어놓는 브랜드의 옷을 사 입겠다는 생각을 한다. 몇몇 브랜드들은 좀 답답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유행이라는 것에 크게 민감하지 않고 베이직한 아이템을 꾸준하게 내어놓는다. 해마다 컬러나 밑단 등에 약간씩 변화를 주긴 하지만 올해 샀던 옷을 내년에 입는다고 해서 ‘어? 그거 작년에 한참 유행하던 거 아니야?’ 같은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미 지난 유행의 뒷북을 울려대느니 유행을 쫓아가지 않는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패션 리더를 현재 가장 핫 한 아이템을 소화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패션 리더는 세상의 유행과는 무관하게 (굳이 안 따르려고 안 따르는 게 아니라 유행이 자신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실 유행을 쫓아가는 건 돈만 있으면 다 된다. 발맹의 천문학적인 숫자를 달고 있는 재킷도 돈만 있다면 사 입을 수 있고, 아무리 비싼 백이 잇백으로 등극했다 하더라도 가서 사 들고 다니면 된다. 그러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돈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안목’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즉 어떤 스타일을 하건 간에 자기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인지 혹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내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연예인 누가 숏커트를 하고 나오면 세상 여자들은 자기 얼굴형이나 두상은 생각지도 않고 우루루 따라서 숏커트를 한다. 한때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이 유행했을 때 역삼각형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딱 붙는 매직 펌을 한 여자들을 나는 수도 없이 봐 왔었다. 거기다 그녀들은 블랙 페레가모 헤어밴드에 샤넬의 블랙 칵테일 원피스, 페레가모 구두를 매치해서 마치 한 매장에서 근무하는 샵마스터들처럼 보였었다.


물론 유행을 따라가면 적어도 패션의 중간은 할 수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입는 옷, 짝퉁이건 진짜건 길을 나서면 적어도 열댓 정도는 같은 디자인을 볼 수 있는 가방을 갖고 다니면 그만큼 위험 부담은 줄어든다. 하지만 나는 그녀들이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몰개성이, 그 무성의함이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주시 꾸뛰르에서 나온 벨벳 트레이닝 복이 유행했을 때였다. 심야영화를 보러 갔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여자들의 한 절반쯤은 벨벳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다. 물론 브랜드는 주시 꾸뛰르를 비롯해서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아디다스까지 다양했지만, 모두들 똑같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벨벳 트레이닝 복 번개라도 하는 줄 알았겠으나 그녀들은 단지 유행하는 옷을 입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트레이닝 복이 유행하지도, 더구나 벨벳 소재의 트레이닝 복은 찾아볼 수도 없는데 그때 꽤 많은 거금을 주고 샀을 것이 분명한 벨벳 트레이닝 복들은 전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옷장에서 다시 유행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딸들이 입다가 안 입는 옷 전문 처리반인 엄마들이 입고 있을까?

 


유행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이 예뻐 보인다고 인정한 것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소수의 의견도 필요한 법이다. 지하철을 타면 온통 이스트팩에서 나온 가방을 메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저것만큼은 따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나팔바지는 암만 봐도 동네 먼지란 먼지는 다 쓸고 다니는 이상한 옷이라고 생각하는 것. 다시 돌아온 돌 청이 전혀 반갑지 않은 것. 이게 어쩌면 유행보다 더 중요한 ‘스타일’을 찾는 방법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스타일을 앞서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주어진 것을 아무 고민도 생각도 없이 그대로 수혈하지는 않는 것. 적어도 그래야 우리가 옷에 쓰는 거금들이 조금은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가끔 거리를 걷다가 보면 첨단 유행을 걸치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몹시 스타일리쉬해 보이는, 아니 그냥 예뻐 보이는 여자들을 보게 된다. 그녀들은 잇백을 들지도 헐리웃에서 이제 막 건너온 최신 유행의 신발을 신지도 않았지만 세련되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건 아마도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그러니까 유행이 아닌 스타일을 찾아서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가 가진 특권 중 하나는 패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특권을 정말 잘 누리고 있는 여자들은 참 예뻐 보인다. 그게 유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녀만의 스타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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