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이다...
지방에 계신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집으로 오신다고 한다.
본 우원장,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하여도 눈썹하나 흔들리지 않는 대범함과 초지일관 유지해온 나름의 가오 하나로 이 험난한 세상 꿋꿋이 헤쳐왔다고 자부하는 바이다.
그러나, 본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갑작스런 상경만큼은 데프콘 1의 전시상황보다도 더 위급하고 불안한 상황을 의미함이니.... 이를 우짠단 말이냐.
뭐, 지방에 계시는 어머니가 혼자 사는 딸네미 자취방에 올라 오시는 거에 대해 비상시국 운운하며 난리를 치니깐 뭔가 이상 야릇한 상상의 가랭이를 펼치는 당원제위 있을 줄로 안다. 허나 본 우원장, 집구석에 세상의 반이나 차지하며 엄한데서 삐대고들 있는 평범한 놈팽이 하나 장롱속에 잡아다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글타고 열 아들 부럽지 않을 터보엔진의 명랑용품 하나 꼬불쳐 둔 것도 엄따.
근데, 왜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본 우원의 근심꺼리는 바로,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청소를 한 후, 기억이 가물가물한 집구석의 상태와... 조금만 눈여겨 보면 발견될 것에 틀림없는 흡연의 증거물들이었다.
이런 이유로, 사옥에서 어머니의 상경 소식을 전해들은 즉시 본 우원은 만사를 제끼고 냅다 집으로 뛰어갈 수밖에 엄썼으니...
굳건히 잠긴 공중화장실의 문고리를 부여잡은 채, 터져나올 것만 같은 설사를 갈무리 하는 그 비장함과 긴박함과도 같이, 숨을 헉헉 거리며 서둘러 집에 도착한 순간 본 우원은 청소를 하는 것인지 아님 철거를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든 노가다를 시전해야만 했고, 사방의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제껴 환기를 시키고, 큰 맘 먹구 구입했던 고급 향수를 바퀴벌레 처형하듯 뿌려대며 그동안 찌든 담배냄새의 흔적을 제거시켜야 했더랬다.
순식간에 재떨이는 본래의 밥그릇으로 부활하여 싱크대에 올려지고, 술자리에서 마다 한 개두 개 모아왔던 일회용 라이러들은 눈물을 머금고 쓰레기 봉지에 담겨져야 했다... 아 씨바... 이거 모아 내다 팔았으면 본 우원장 진작에 부자됐을지도 모른다. 좌우당간, 피다 남은 담배는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장롱속 겨울옷의 주머니에 숨겨두면서, 이럭저럭 사실 왜곡을 위한 은폐작업은 대충 마무리가 되고, 스스로의 지혜로움과 날렵함을 대견해 할 즈음이 되어서야 어머니가 도착하셨다.
"밥은 해묵고 사냐?
혼기도 차다 못해 넘치는 가시나 방 꼬라지가 이게 뭐다냐?"
의당, 올라오시면 퍼부으시는 어머니의 잔소리려니 생각하며, '담배만 안걸리믄 된다', '오늘도 무사히~ 아니, 오늘만 무사히~'하고 주문을 외웠더랬다.
본 우원장이 부모님과 따로 살기 시작한 것은 햇수로 9년 정도 된다. 집이 지방인 관계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레 홀로 살기 시작했고, 직장까지 서울에서 다니니 당연히 혼자 살 수 밖에..
그런 특수성 탓에 본인의 흡연 경력은 대학생이 됨과 동시에 카운트 들어가며 대략 10년 가까이 되지만, 여태 부모님은 내가 담배피우는 줄을 모르신다.
대학다닐 때는 명절이나 방학 때, 그러니깐 일년에 두세 번 정도 집에 내려갔고, 그 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서울에서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었던 본인으로서는 구지 며칠 안되는 부모님과의 시간을 딸래미의 흡연문제로 언성 높이며 지내고 싶지 않았던 탓에 숨기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른 것이다.
사실, 담배를 피우게 된 계기는 크게 남다르지 않다. 대학 신입생 시절, 담배를 손에 들고 있던 동기 남자넘들이 참으로 어른스러워보였고, 부러움과 호기심어린 눈길로 쳐다보는 본인에게, 동기들이 장난삼아 권했던 고 담배.... 크으...
허나, 시작이야 우찌됐건 지금 본 우원장 나이 20대 후반이다. 춘향이 나이 열 여섯에 이몽룡 만나 명랑노동을 즐겼다고 하니, 내가 고때 태어났으면, 애를 낳아도 한타스를 낳았을 나이다. 담배의 해악이야 누가 모르는가. 허나, 가타부타 결정하는 것은 분명 성인인 본인의 영역이리라.
더군다나, 본 우원장 글로 밥벌어 먹겠다고 나선 글쟁이다. 글쟁이들의 특수성을 구지 예로 들지 않아도, 다 큰 성인이 담배 좀 피우는 게 모 글케 잘못된 일이라고 이 나이를 묵어서까지 지레 겁을 먹고 이 법석을 떨어야 한단 말인가.
아~ 어머니만 올라 오시면 겪어야 하는 이 이론과 현실 사이의 부조리... 갑자기 더욱 담배 생각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얼랠래. 너 이거 모다냐? 이거, 담배 아니냐?
세상에... 젊은 여자들이 요즘 담배 많이 피운다고 뉴스에서 하도 지랄을 해대길래,
세상에 망조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구서 혀를 끌끌 찼었는디,
내 딸뇬이 그럴 줄은 몰랐네 그랴."
화장실에서 나오시며 일갈을 지르시는 어머니... 아! 청소한답시고 법석을 떤 와중에 화장실 휴지통을 깜빡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부모랑 떨어져 지내도, 조신하고 정숙하게 설 생활 잘하고 있다고
글케 자랑을 하고 살았었는디, 이 애미 몰래 요 짓거리 하고 살았더냐?
아이고~! 아이고~!!"
그래, 일은 터지고야 만 것이다. 그래, 당당해지자. 지금까지 머리로 되뇌었던 완벽하고도 넘넘 당당한 이론이 준비되 있지 않았던가. 정면돌파다~!!
"엄마한테 숨긴 건 죄송한데여. 걱정하실까봐 그랬죠. 그렇지만 엄마!
제 나이가 몇 인데, 고삐리 담배피우듯이 그러세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니가 알아서 해? 담배가 몸에 안좋은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인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여기서 굽히면 안된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 앞에 서 있는 저 분이 어머니가 아니라 남존여비를 강요하는 수구보수의 화신일 뿐이라 생각하자. 그러타! 지금 나는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는 비겁한 딸래미가 아니라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혁명 전사에 다름아니지 않는가!
"오빠랑 남동생 군대갔다오고 나서는 슬그머니 재떨이도 갖다놓으셔놓구선,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내, 진즉에 알아봤다. 니 혼자 설로 보낼 때부터 이럴 줄 알았어.
니가 니 오빠랑 남동생이랑 같냐? 가시나가 혼기도 다 차가지고 어쩔라고 그러냐?
그래서 시집 가것냐? 이뇬아!"
휘리릭~
재떨이가 날라온다.
날랜 몸동작으로 매트릭스의 하이라이트가 대한민국 서울의 모처에서 재현되고...
허나, 이후에 등짝을 가격하시는 전광석화와도 같은 무지막지한 어머니의 손길... 조뙈따.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도망치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아~ 씨바. 이론과 현실의 부조리여. 폭력 앞에선 가오의 무력함이여.
때마침,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서둘러 나오느라 우산도 챙기지 못했던 본 우원장.. 간신히 옆 집 처마 밑에 몸을 숨길 수 있었음이다.
다행히 호주머니에 꺽인 담배 하나 있으니, 이걸 '천우신조'라 하는 갑다.
본인이 생각해도 다 큰 처자가 처마 밑에서 꺽인 담배를 수술해가며 조심스레 피우고 있는 꼬락서니가 스스로 우스워졌다.
그러나...
나쁜 운은 결코 홀수로 오는 법이 엄따 하였는가. 때마침, 비틀비틀 술 취해 지나가던 아저씨, 본 우원장 보며 여자가 길바닥에서 담배 피운다고 또 한마디 욕지거리를 해댄다.
젠장맞을...
띠바. 근데 이상하게 담배 맛은 열받을 때의 이 맛이 진국이란 말이쥐...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아이러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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