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청소년 여러분, 별일 없나요?

한국에서 쓰여 지는 성교육도서들은 대체로 성-사랑-결혼에 대하여 강한 연속성을 부여한다. 이와 같은 인식은 1920년대에 서양에서 일어난 1차 성혁명에 기반하여 등장한 것으로, 과거 금욕적이고, 헌신적인 빅토리아적 가족에서, 애정에 의해 결합되는 ‘연애결혼’의 제도화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고등학교 시민윤리가 주장하는 공식적인 입장이기도 하며,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성 담론이다. 이러한 담론은 성을 부부의 침실이라는 유일한 공간으로 한정시키며, 결혼 이전의 성적욕망들은 불완전한 것, 위험한 것 등의 도덕적, 성과학적인 가치판단을 내림으로서 유보시키는 전략을 통해 성을 통제하려 한다.

 

 

 

혼전순결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청소년 성 보고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집필한 수기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엮은이는 “올바른 성교육은 순결가치관에 기초해 행복한 가정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라는 말을 통해 이 책의 논조를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순결이데올로기는 과거에는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적용되던 가부장제적 억압이었으나, 전략의 세련화와, 기독교적 금욕주의, 가족이데올로기등과의 결합을 통해 남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압도적으로 여자-학생의 글 그것도 여고/여중의 학생들의 글이 많다. 책을 엮은 단체가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아직도 순결교육은 많은 부분 여중/여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책은 그것의 산물 혹은 일환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또한 “여자란 자고로 예쁘고 귀여운 사기 그릇 같아야해. 무거우니 언제나 조심조심 다루어야 하고, 깨끗하고 윤기 나는 밥이 사기그릇의 기품을 더 높여주고 멋을 발해 주거든.”과 같은 말을 긍정하고, ‘나라와 정조를 위해 순국한 논개의 자손’, ‘나 하나쯤은 스스로의 힘으로 보호해야 할 현명하고 지혜로운 마음의 은장도’와 같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여자-학생필자의 말하기를 통해(혹은 그것을 선택하여 수록하는 것을 통해), 명목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양성평등’과의 괴리를 드러낸다.

 

더불어서 가정에서의 행복한 성과, 가정의 테두리가 아닌 곳에서의 어둡고 위험한 성을 대립시키는 기술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 두 가지의 질적인 차이는 비유적이고 비 논증적인 진술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각종 성폭력의 피해담을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몸조심하고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식의 괴상한 논리로 전유하여,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무시한 채, 현실을 곡해 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0대를 위한 성교육 수첩]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순결’을 직접적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과 비슷한 ‘떳떳함’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 떳떳함은 ‘사랑’, ‘생명’, ‘책임감’과 연계되는 개념으로서 최종적으로는 ‘결혼’이 그 최고의 형태로 여겨진다.

 

이 책은 성의 과학이라는 입장에서 주로 기술되고 있다. 성에 관한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닌 쾌락에 대한 약간의 긍정과, 생리학적인 무해성의 입증을 통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열어주지만, 성행위의 자녀생산기능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고, “나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체질화된 성질”인 모성과 “이 나라가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힘은 바로 아버지의 힘”인 부성을 강조하면서, 청소년들이 당연히 부모가 될 것(혹은 되어야 함)이라는 가정을 함과 동시에, 성역할의 구분을 구조화 하고 있다.

 

또한 사춘기의 성적호기심과 욕망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것은 남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서술하며, 여학생은 욕망에 대하여 수동적이고, 거부감을 가지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예컨대 자위행위는 나쁜 것이 아니며, “자위행위를 하고 난 후 생활에 활력이 된다면 그것은 생산적이라 할 수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정작 뒤에 나오는 자위행위의 에티켓은 남자-학생을 위한 내용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성폭행 예방법’을 설명할 때에는 여성이 취할 수 있는 방법만을 제시하고 있으며, “나는 애기를 낳을 소중한 몸임을 잊지 말자!”와 같은 말을 통해 여자-학생에게 일률적으로‘어머니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두 권의 책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입장은 ‘가정’을 완전무결하고, 행복을 보장하는 체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젠더적, 섹슈얼리티적 문제제기가 주로 가정의 영역 안에서 제기되는 것임을 상기해 볼 때, 이는 매우 성급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가정은 성정치의 종결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점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꾸린 이후의 갈등과 문제점들에 대해서 함구하는 것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성에 관한 무책임한 환상들을 심어주는 포르노그라피 만큼이나 ‘환상적’인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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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1. trackback from: 심리학,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을 위하지 않는 심리학의 사용
    하비 콕스(신학자, 미국)는 '오늘의 세계적 가치 (http://book.filltong.net/isbn/893100558X)'라는 대담집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린이들을 특정 상품에 옭아매는 업종에 진출하지 말라고, 시장이라는 신의 부하가 되어 이 사악한 목적에 재능을 쓰지 말라고, 아이들을 일찌감치 꾀는 일을 하지 말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시장이라는 신'의 부하가 되는 것을 "우리를 희생시키면서 심리학 연구를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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